'수정4동'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20.11.28 나와 갑장 백초탕(Since 1971)
  2. 2018.01.18 碑石을 찾아서 - 경부철도용지 표지석 1
  3. 2016.02.09 그리워져라
  4. 2015.04.01 아무도 없는 날 2
  5. 2015.02.05 백초이용원 2
728x90

백초탕에 관한 기억은 어슴푸레한 장면부터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께서 외국을 자주 나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손을 잡고 목욕탕을 다녔었다.

 

확실하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이 둘 있는데, 하나는 유치원생 시절(1977년) 어느 겨울, 여탕 탈의실 옷 바구니에 같은 유치원 유니폼이었던 남색 개바지(뜨개질바지)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학교 저학년 때 민망해서 정말 가기 싫었는데 억지로 어머니 손에 끌려 손바닥으로 등짝을 맞아가며 끝내 여탕을 들어갔던 기억이다. 나름 어머니의 배려로 사람이 없는 새벽이었다지만 누군가 먼저 와 있었다.ㅠㅠ

 

할머니랑 셋이서 갔던 기억도 나는데 늘 새벽별이 반짝이던 이른 시간에 힘들게 일어나 쌀쌀한 바람을 헤치고 집을 나서서 동이 틀 무렵 돌아왔던 장면이 선명하다.

 

처음엔 단층 건물로 지어져 카운터를 중심으로 왼쪽이 남탕, 오른쪽이 여탕이었다. 목욕탕 입구에는 정원이 있었고 카운터 맞은편에 작은 화단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코브라처럼 생긴 현무암이 세워져 있었다.

 

탈의실에는 나무조각을 투박하게 깎아 만든 열쇠가 꽂힌 옷장이 있었는데 명절 직전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어 모자라는 옷장 대신 커다란 바구니에 옷을 담았던 풍경도 기억도 난다. 

 

중학교 1학년때(1984년)까지 옛 모습의 목욕탕을 다녔던 기억이 있고, 이후 리모델을 하여 현재의 2층 건물이 되었다.

인터넷에는 내가 태어나기 한달쯤 전인 1971년 9월 22일 문을 열었다고 검색이 된다. 백초탕의 위치상, 그리고 영업을 시작한 시기상 1969년 준공된 수정아파트의 주민들을 겨냥하여 영업을 시작한 목욕탕이라 생각된다.

 

백초탕의 뜻은 흰'백'에 풀'초'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동안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바람에 정확한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백초탕 옆에는 같은 이름의 백초이용원이 있었고, 몇 년 전 이발사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30년 넘게 거기서 머리를 깎았다.

 

가장 최근 백초탕과 관련된 기억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가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가는 것이라는 것에 공감을 하는데, 첫째가 세 살쯤 되었을 때(2003년) 이른 아침 같이 목욕을 갔다가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집에서 원망을 들었던 사건이다. 

 

그 이후도 좀 다니다가 오래된 목욕탕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지저분한 느낌이어서 발을 끊은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얼마 전 생각지 못한 사건에 휘말려 다시 백초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들어갔는데 이전보다 산뜻해진 느낌이어서 그리고 마침 휴직기간이기도 해서 이달 들어서만 3번째 백초탕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왔다.

 

쌀쌀하게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이른 아침 한적한 목욕탕에서 뜨겁게 몸을 담그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태어난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지만 현재 다른 곳으로 이사갈 계획도 없음으로 언제까지 나와 나이가 같은 백초탕을 계속 다니게 될 지 새삼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갔을 때 사람이 아무도 없길레 이 때다 싶어서 구석구석 사진을 좀 찍어보았다.

 

수정아파트 1호동 뒤편, 산복도로에서 한블럭 뒤로 들어간 한적한 일방통행로에 위치

 

마지막으로 갔을 때 요금이 40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6000원. 10년뒤 정년 퇴직을 하면 달목욕을 끊어보고 싶다. 4년전 목욕탕을 새로 인수한 사장님이 여기저기 손을 보고 목욕탕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계심.
요금을 내고 이렇게 생긴 계단을 올라오면...

 

남탕 입구!
예전엔 수건을 챙겨왔었는데 지금은 공용 타월이 비치되어 있다.
탈의실에서 보이는 대욕탕! 어렸을 때 기억중 하나가 저 둘레에 앉아 작은 바가지로 물을 퍼 목욕을 하는 풍경인데 어느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바가지로 물을 퍼 양치를 하는 모습에 어린 마음에도 경악을 금치못했던 생각이 난다.
나가시(세신사) 베드와 작은 욕조. 동그란 욕조는 물을 받아 퍼서 쓰는 용도이고 저 뒤의 사각 욕조는 의료기(?)가 들어 있는 욕조이다. 남탕 나가시는 40년쯤 벌써 없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침대는 계속 있다. 왜일까???
바로 그 산호수경이라는 물리치료기. 아마 90년대 쯤 설치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도 작동하는 지는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폭포 벽화. 88년 전후로 생겼는데 오른쪽 하단엔 화가의 싸인도 있었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뒤로 기대어 누워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았다. 백초탕의 느낌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 생각된다. 색이 바래 윤곽은 희미해졌지만 칠이 벗겨진 곳이 없어 신기했음.
그리고 요즘 계속 오게 만드는 등밀이 기계. 기계가 튼튼한지 옛모습 그대로이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면 몸의 2/3정도는 힘 안들이고 씻을 수 있다. ㅎㅎ
박력있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믿음직한 수도꼭지! 
처음 모습 그대로의 한증탕. 뜨거운 손잡이를 이테리타올로 단열시켜 놓았다. 알미늄 문틀에 팔이 닿여 작은 화상을 입었던 적이 있다. 따지자면 소송감이지만 약바르고 며칠 따갑다가 끝. 살짝 비치는 남자 모습은 아무리 자세히 봐도 안보임. ㅎㅎ
너저분한 바닥 카페트를 걷어내서 깔끔해진 느낌.
한증탕 안에서 보이는 목욕탕 풍경(순한 맛 광민탕 ㅋ)
내가 나올 무렵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셨다.

 

브라운관 티비는 어느덧 LED 모니터로 교체되어 있고... 간단히 운동할 수 있는 장비와 보급형 사우나의자가 옛모습 그대로다.
아직도 탈의실 염색이 허용되는 듯. 예전에 염색약을 흘려 바닥에 얼룩이 생긴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자주 하는 목욕은 만병통치랍니다!
나름 수정4동의 랜드마크였던 굴뚝, 85년까지 살았던 집 뒤편에서 촬영, 나무를 때던 시절 높았던 굴뚝을 허물어 짧막해졌다.

Posted by Yurok
,
728x90


뒷산에 묻혀있는 한 세기 전의 기억을 찾아서...

부산민학회 주경업 회장님과 2013년 9월 17일 답사.

 

사방댐 공사를 한 초량천 계곡을 따라 청조약수터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표지석이 4개 보입니다.

각각의 비석마다 경부철도용지(京釜鐵道用地)라는 한자가 세겨져 있습니다.

계곡은 동일중앙초등학교 정문쪽 일방통행로를 거쳐 현재 생태하천 복원사업중인 초량천까지 연결이 됩니다.

제 기억으로 산복도로에서 초량6거리까지 노출되어 있던 초량천은 80년대 말쯤 복개도로가 되었습니다.

서중학교와 동일중앙초등학교 자리는 원래 철도배수지가 있었던 곳으로 원래의 모습은 1929년 요시다 하츠사부로가 그린 부산 그림지도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처음 부산역은 현재 정발장군 동상자리에 있었으며, 영선고개부근 쌍산(영선산)을 깎아 착평공사를 한 이후 현재 교보생명빌딩자리가 있는 중앙동쪽으로 옮겨가게 됩니다.(1953년 대화재로 소실)

2012년 부산시립박물관과 경부철도용지비석 1차조사에 함께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아래와 같이 검토 결과를 전달 받았습니다.

철도관련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검토한 결과 본 표지석은 1898년 9월 이후부터 1901년 9월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경부철도라는 용어는 일본식 표기로 최초에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경부철도 부설 허가는 1898년 9월 8일이었으니 표지석 제작시기는 이 이후로 추정되며, 본래 경부선 부산시내 선로 계획은 구덕산에 터널을 파고 용두산 서쪽을 거쳐 남쪽 바닷가(지금의 남포동)에 해륙연락역을 건설한 계획이었으나, 구덕산 터널을 피하기 위하여 동쪽 범천동 쪽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1901년 9월 21일 초량에서 경부철도 기공식을 거행하여 선로부설 계획 노선을 변경한 기공식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므로 본 표지석은 경부철도 부설 계획을 수립하고 계획노선에 따른 표지석을 설치하였다가 계획 노선을 변경한 후 이미 설치된 표지석을 그대로 방치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물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증기기관차를 운용하기 위한 배수지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표식일 것 같기도 합니다.

동일중앙초등학교 부근에는 해방전 부터 철도관사가 있었고 초량동 일대에는 철도병원 등 철도 관련 시설들이 모여 있어 동구는 예로부터 경부철도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부산동구의 경부철도 관련 장소와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우리나라 철도역사의 시발점인 동구의 지리적 역할이 재조명 된다면, 대륙의 관문으로서 위상이 더 높아 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Yurok
,

그리워져라

일상 2016. 2. 9. 15:48
728x90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평형감각  (0) 2016.02.19
타샤의 정원  (0) 2016.02.13
Ningbo, China  (0) 2016.02.01
The Joy Luck Club  (0) 2016.01.26
세상의 끝  (0) 2016.01.21
Posted by Yurok
,

아무도 없는 날

일상 2015. 4. 1. 08:20
728x90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유록 첫 개인전 - 수정아파트(4/18~5/30)  (4) 2015.04.16
가지마  (2) 2015.04.07
china town  (2) 2015.03.23
Seoul Seoul  (2) 2015.03.22
필름스캐너 제작 DIY  (0) 2015.03.20
Posted by Yurok
,

백초이용원

일상 2015. 2. 5. 13:52
728x90

제법 오랫동안 장발을 하고 다녔는데 작년말 브레드피트가 나오는 퓨리를 보고는 짧은 머리가 하고 싶어져 다음 날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오늘 보니 한 달 동안 자란 머리가 거슬려서 또 이발소를 다녀왔다.

머리를 기를 때는 석달에 한 번 정도 다듬었는데 역시 짧은 스타일은 자주 손을 봐야 한다.


오전에 머리를 깎고 온 백초이용원은 올해로 딱 30년째, 내가 중학교 2학년 이었던 1985년 지금 집으로 이사와서 부터 다니고 있다. 지금 내가 그 때 당시 처음 봤을 때 아저씨보다 훨씬 더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고 아저씨는 최근 몸이 불편해지셔서 지팡이를 사용하신다.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담배연기 찌든 냄새와, 특히 겨울은 연탄난로 냄새가 참 정겹다. 담배라면 질색이지만 이발소 실내에 배인 담배 냄새는 불평을 하기도 전에 '여기는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요!' 라고 먼저 선수를 치며 말하는 듯하고, 한편으론 뭔가 오래된 아련한 느낌이 들게 한다. 예전엔 보통 한 두 명 정도가 먼저 와 있어서 신문이나 만화책을 보며 차례를 기다려야 했었는데 최근엔 아저씨 혼자 TV를 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끔씩 들리는 곳이라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머리를 깎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요즘은 중년남성들도 미장원을 가는 경우가 많아서(이발소가 드물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발소에서 머리 다듬는 일은 사라지는 기술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젊은 이발사를 볼 수가 없고 현역으로 활동중인 이발사는 육십줄에 들어선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반대로 예전엔 미장원보다 이발소가 많아서 가까운 곳에 미장원이 없으면 여중생들도 머리를 자르러 종종 왔다고 한다. 30년 전엔 주말만 되면 머리 깎으로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저녁이면 코피가 날 정도로 호황이었다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동네 미장원은 몇 번 가봤지만 '낯선' 이발소에 내 머리를 맡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머리 스타일이 별로 특이할 것은 없지만 방문 초기 몇 번의 시행착오를 다듬으며 나름 최적화 고정된 스타일이라 다른 곳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기도 싫고 많이 낡았지만 익숙한 그 공간이 나는 편하다. 미장원 보다 좀 큰 가위로 서걱서걱 자르는 느낌이 시원하고 맨 마지막에 전분가루를 뭍혀 짧게 잘린 부위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도 마음에 든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 몇 명이서 머리를 깎는 동안 이런저런 동네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나는 그 이야기에 끼어든 적은 없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변두리 주택가 남자들의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런 동네에 중년남성들을 위한 '클럽'이라 부를만한 장소가 있을 리가 없고, 알콜 없이 맑은 정신으로 편하게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이발소와 약수터 정도 뿐인 것 같다는 생각에 오래된 백초이용원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이발소에 들어설 때마다 작년부터 부쩍 기력이 떨어져 보이는 아저씨의 컨디션을 살펴본다. 분명히 이 이발소는 아저씨의 건강상태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막상 그 날이 닥치면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 달에 한 번쯤은 낡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맡기고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몇 달 전 건물주인이 바뀌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옮겨 왔다. 그 전까지는 바로 이 골목 맞은편에 있었다. 실내가 좁아져 더 오붓한 느낌이다.


-2015.02.05 이발소에서 내 사진은 처음 찍어보았다.



-2005.06 어린 아이들은 짧은 머리가 귀엽다. 한동안 중국기예단 스타일 머리로 깎아주었다.


- 2011.01


- 2012.05


그 세대의 향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여쁜 손님 맞고,  (1) 2015.02.12
세벽의 항해  (2) 2015.02.11
行かないで  (6) 2015.01.25
홈메이드콘서트  (0) 2015.01.24
囍煙, 그리고 우리집의 역사  (2) 2015.01.23
Posted by Yur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