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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제때 다듬지 못했던 머리를 자르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갔다.

(30년 넘게 다녔던 이발소는 몇 년 전에 사라져서 그다음으로 찾아낸 이발소.)

지난 설에도 문이 닫혀 있었는데 여전히 닫혀있었다.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저번에는 미장원에서 머리를 다듬었는데 이번에는 반드시 시원하게 깎고 싶어서 지도 앱을 검색,

거리 순으로 찾아 가봤더니 지도상에 표시된 두 곳은 이미 문을 닫았고, 세 번째 찾아간 곳에서 영업 중인

이발소를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옛날식 실내 창과 주인아저씨의 꼼꼼함을 짐작케 하는 화분에서 입구에서부터 호감이 생긴다.

 

입춘은 지났지만 아직 날이 쌀쌀한 탓에 문을 열자마자 정겨운 석유난로 냄새가 오래된 이발소임을 느끼게 한다.

먼저 온 영감님이 면도를 하는 동안 실내를 둘러보았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발소그림, 지하상가에 늘어놓고 파는 키치 서양화를 이발소그림이라고 부를 만큼 이발소를 가장 이발소답게 해주는 하는 소품이다.

장인(목수)의 손길이 느껴지는 합판제 빌트인 가구

대하소설전집

오래된 오디오

일간지와 시사월간지

면도거품 솔

머리 감는 타일 세면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요금표

근처 이발소가 몇 군대 없기 때문에 서로들 소식은 잘 아시는 듯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문이 닫혀있었던 그 이발소는

아쉽게도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건너편에서 같은 일을 하다 돈을 모아 이 자리에 건물을 지어 개업을 한 것은 1985년 추석 때였기 때문에 정확히 개업일을 기억하고 계셨다.

 

이발소가 한창 호황일 때는 종업원이 5명이나 있어서 의자마다 머리 깎는 손님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던 느낌을 잊지 못해 가끔 장발을 하고 싶을 땐 미장원에서 다듬기도 하지만

확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땐 늘 이발소를 찾게 된다.

 

이발소와 미장원을 비교해보자면 이발소 쪽이 좀 더 정밀한 기술을 사용한다는 느낌이다.

 

특히 짧은 머리를 할 때 마지막에 녹말가루를 묻혀 삐져나온 곳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렇게 머리를 깎고 나면 머리 깎을 시기가 좀 지나버려도 크게 어색하지가 않아 좋다.

 

이 곳도 사장님이 직접 머리를 감겨주셨는데 손 힘이 얼마나 좋은 지 아프면서도 시원한 느낌에 한동안은 걱정 없이 여기서 머리를 깎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습관이나 스타일은 정말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TV 아나운서들 조차 바가지 머리 같은 스타일을 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지금 내 머리스타일은 혼자서 이발소를 다녔던 10대 초반부터 고정된 것인데 앞으로도 같은 스타일을 지킬 수 있도록 이발 업계의 마지막 세대를 지키고 계시는 백발의 이발사 아저씨들이 좀 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주시길 바란다.

 

 

Posted by Yu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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