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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3 囍煙, 그리고 우리집의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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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에 잠깐 들릴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희연 담배포갑지를 보게 되었다. 

희연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전매국에서 판매하였던 제품이고, 지금도 상태 좋은 포장지가 거래가 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오랫동안 많이 생산되었던 담배였던 것 같은데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남겨 뒀다.

그도 그럴 것이...


<두툼해 보이는 크기가 제법 필 만한 양이 들어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나에게 한자를 가르치셨던 천자문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할머니께서는 1984년에 돌아가셨다.)

그 책의 표지가 벗겨져 드러난 그림이 너무나도 익숙했던 바로 희연담배포갑지였던 것이다.

한 번은 책표지의 그림이 무엇인지 할머니께 여쭤 봤더니 예전엔 종이가 귀해 담배포갑지를 펼쳐서 붙인 것이라고 하셨다. 네 갑의 담배포갑지를 모아뒀다 붙여서 만든 책이다.

예전엔 무슨 단단한 나무 꼬챙이에 곶감을 한 줄로 끼워서 팔았었는데 그걸 뽑아 다듬어 작대기를 만들어 한자한자 짚어주시면서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난다. 

글자는 손가락으로 짚으면 안된다 그런 주의를 받았던 것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음훈이 옛날식 한글로 표기가 되어 있는 책이 어린 눈에 참 신기해 보였다.

우리 아이들은 서른 권 정도의 마법천자문으로 한자를 익혔지만 나는 저 책 한 권으로 공부했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내가 기억하고 지금 쓸 있는 글자는 손꼽을 정도인 것 같다.


그 책은 마을에서 서당을 하셨던 할머니의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책이라고 하셨다.

생각난 김에 오늘 장농 깊숙히 보관해 놓은 책을 다시 꺼내 살펴봤더니 책의 뒷표지에는 癸酉小春幾望成 이라고 적혀있다. 내가 저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있나?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계유년은 1933년일 것이고 小春은 음력 시월, 幾望은 음력 열나흗날 밤이라는 뜻이었다.

즉, 음력으로 1933년 10월 14일날 밤에 완성되었다는 뜻으로 양력으로 변환하면 1933년 12월 1일 금요일 밤이 되겠다.

예전 같으면 사전과 만세력을 뒤적거리며 한참 찾았을 것을, 나같은 문외한도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한문과 역사 전공자들이나 관심가질 만한 내용을 알아낼 수 있으니 이런 방면으로는 짧은 기간동안 정말 비약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한자 필기검색은 정말 마음에 드는 기능이다!

속지가 누렇게 변한 것은 내 기억으론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때 였는데 들기름인지 참기름인지를 바르면 종이가 오래 보존된다고 할머니께서 한장한장 기름을 발랐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 저 책을 넣어 두었던 할머니 문갑을 열면 고소한 냄새가 났었다.

마지막 장의 오른쪽 페이지의 내용은 전체 판독 불가. ㅠㅠ

한문 잘 아시는 분이 좀 읽어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는데 말입니다.

책의 한 페이지는 한지 한장을 접어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한장이 두 겹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페이지에 비치는 표는 한 페이지 사이에 넣어서 글자의 위치를 정렬해가며 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동경의 주소가 적혀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1930년대 중반부터 해방직전까지 동경에 사셨던 시절의 주소이다. 아버지 제적증명서에는 출생지가 동경시 니혼바시 가키가라초 2정목 **번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 주소인 것 같다. 

책을 덮으며 경북 어느 산골마을의 선비가 자녀 교육을 생각하며 한자한자 정성들여 손수 쓴 책을 등잔불 앞에서 묶었던 80여년 전 어느 겨울 밤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조선에서 농사로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어 친척의 소개로 동경엘 가게 되셨는데 거기서 차별 받기가 싫어 성을 일본식 히라야마(平山)로 바꾸고 일을 하셨다고 한다. 평산은 일본에서도 흔한 성씨이고 평산신씨의 실제 본관과도 한자가 똑같기 때문에 평산신씨들은 그런식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민초기 고철수집으로 단기간에 큰 돈을 벌어 비행기 제작용 나사공장을 차리시고는 10여만에 지역유지 정도의 생활을 하시다 태평양전쟁 말기 동경공습에 전 재산이 소실되어 귀국하셨다. 

귀국당시 아버지께서 첫돌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스물 몇 살이 되셨을 때 출생지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그 주소를 직접 찾아가 보셨으나 상상했던 풍경들과 너무 달라 실망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생각이 나서 그 주소를 구글어스로 찾아봤더니만 황거에서 제법 가까운 번화가이고 지금은 주식회사보이스넷이라는 회사의 빌딩이 들어서 있다.

아무튼 오래된 담배갑으로 부터 내가 기억하는 우리집의 역사 단편을 혼자서 이리저리 더듬어 보게 되었는데 당시 동경에서 운영했던 공장의 상호를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이 좀 아쉽다. 아버지께서도 오래 전에 돌아가셔서 더 여쭤볼 분도 계시지 않고... 그것까지 알아낸다면 숨겨진 이야기들을 좀 더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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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u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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