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초탕에 관한 기억은 어슴푸레한 장면부터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께서 외국을 자주 나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손을 잡고 목욕탕을 다녔었다.
확실하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이 둘 있는데, 하나는 유치원생 시절(1977년) 어느 겨울, 여탕 탈의실 옷 바구니에 같은 유치원 유니폼이었던 남색 개바지(뜨개질바지)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학교 저학년 때 민망해서 정말 가기 싫었는데 억지로 어머니 손에 끌려 손바닥으로 등짝을 맞아가며 끝내 여탕을 들어갔던 기억이다. 나름 어머니의 배려로 사람이 없는 새벽이었다지만 누군가 먼저 와 있었다.ㅠㅠ
할머니랑 셋이서 갔던 기억도 나는데 늘 새벽별이 반짝이던 이른 시간에 힘들게 일어나 쌀쌀한 바람을 헤치고 집을 나서서 동이 틀 무렵 돌아왔던 장면이 선명하다.
처음엔 단층 건물로 지어져 카운터를 중심으로 왼쪽이 남탕, 오른쪽이 여탕이었다. 목욕탕 입구에는 정원이 있었고 카운터 맞은편에 작은 화단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코브라처럼 생긴 현무암이 세워져 있었다.
탈의실에는 나무조각을 투박하게 깎아 만든 열쇠가 꽂힌 옷장이 있었는데 명절 직전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어 모자라는 옷장 대신 커다란 바구니에 옷을 담았던 풍경도 기억도 난다.
중학교 1학년때(1984년)까지 옛 모습의 목욕탕을 다녔던 기억이 있고, 이후 리모델을 하여 현재의 2층 건물이 되었다.
인터넷에는 내가 태어나기 한달쯤 전인 1971년 9월 22일 문을 열었다고 검색이 된다. 백초탕의 위치상, 그리고 영업을 시작한 시기상 1969년 준공된 수정아파트의 주민들을 겨냥하여 영업을 시작한 목욕탕이라 생각된다.
백초탕의 뜻은 흰'백'에 풀'초'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동안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바람에 정확한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백초탕 옆에는 같은 이름의 백초이용원이 있었고, 몇 년 전 이발사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30년 넘게 거기서 머리를 깎았다.
가장 최근 백초탕과 관련된 기억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가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가는 것이라는 것에 공감을 하는데, 첫째가 세 살쯤 되었을 때(2003년) 이른 아침 같이 목욕을 갔다가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집에서 원망을 들었던 사건이다.
그 이후도 좀 다니다가 오래된 목욕탕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지저분한 느낌이어서 발을 끊은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얼마 전 생각지 못한 사건에 휘말려 다시 백초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들어갔는데 이전보다 산뜻해진 느낌이어서 그리고 마침 휴직기간이기도 해서 이달 들어서만 3번째 백초탕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왔다.
쌀쌀하게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이른 아침 한적한 목욕탕에서 뜨겁게 몸을 담그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태어난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지만 현재 다른 곳으로 이사갈 계획도 없음으로 언제까지 나와 나이가 같은 백초탕을 계속 다니게 될 지 새삼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갔을 때 사람이 아무도 없길레 이 때다 싶어서 구석구석 사진을 좀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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